그림 한 모금

[그림 한 모금] 윌리엄 부게로 (Bouguereau), 시대를 잘못만난 비운의 화가

my jeje 2022. 11. 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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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서점의 천 개 퍼즐을 구매하면서 부게로의 그림을 접하였습니다.
퍼즐을 맞추는 내내 누가 그린 걸까 궁금했습니다.
루벤스가 그렸다기에는 날렵한 몸매.
라파엘로가 그렸다기에는 세련미가 느껴졌습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우연히 책을 보면서 알게되었는데요.
퍼즐 그림의 주인공은 부게로였습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게로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25 -1905)


그의 구성, 형태 및 주제는 주로 고전적인 접근 방식을 따랐습니다.
부게로는 상세한 연필 연구와 오일 스케치를 포함하여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신중한 방법은 인간의 형태를 즐겁고 정확하게 렌더링 하였고, 특히 피부 표현, 손, 발 그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부게로가 활동하던 시대에서 그는, 아카데미 예술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혔습니다.






동시에 아방가르드에 의해 비난을 받기도 했죠.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미국에서 큰 명성을 얻었고, 말 그대로 성공한 "비싼 값"에 거래되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920년 이후, 서서히 대중의 취향에서 멀어지게 되는데요.
미국의 백만장자들에게 칭송받고 부유한 삶을 영위했지만, 격변하는 시대에 주류가 바뀌면서 수십 년 동안 언급되지도 않는 지경에 이릅니다.
"새로운" 미술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위대한 화가"에서 "과거에 갇힌 유능한 기술자"로 전락하게 된 거죠.


드가와 그의 동료들은 "매끄럽고 인공적인 표면"에 의존하는 예술적 스타일을 표현하는 경멸적 조어로
"Bougeuereaut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선봉자였던 드가와 모네는 부게로가 2000년까지 가장 위대한 19세기 프랑스 화가로 기억될 거라 평했다고 합니다.
날카로운 재치와 새로운 심미안으로 새 시대의 그림을 선보였던 그들은
가까운 미래 대중의 취향에 자신들의 작품이 맞지 않을 거라 판단했던 거죠.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인상파들은 미완성의 서투른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고, 대부분은 작품을 팔지 못해 가난한 삶을 영위했습니다.
자조 어린 생각과는 달리 빠르게 주류 미술계에 편입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좇지 못한 부게로는 서서히 미술계에서 잊혀갑니다.

1974년, 뉴욕 문화 센터는 호기심으로 부게로의 작품을 선보입니다.
1984년, 보르기 갤러리는 그의 23개의 유화를 주최하고, 같은 해에 캐나다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주요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파리의 Musee du Petit-Pala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로 부게로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됩니다.
"예술계에서 가장 높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재조명되고,
오늘날,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박물관이 부게로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매일 나는 기쁨으로 가득 찬 내 스튜디오에 간다
어둠 때문에 멈춰야 할 저녁에 나는 내 사랑하는 그림에 나를 줄 수 없다면
다음날 아침이 오기를 거의 기다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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