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모금

[ 이건 봐야해 ] 라울 뒤피(Raoul Dufy)의 음악같은 색채

my jeje 2022. 10. 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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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전시회에서 뒤피의 춤추는 듯 노래하는 듯한 경쾌한 그림을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을 잊지 못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던 치밀하게 짜여있는 "완벽한" 그림과 달리
대충 그린듯한 새의 지저귐 같은 표현력.

맑고 밝은 색채는 윤곽선을 넘나들며 얇은 한지에 나염이 스미듯 서로를 표현하고.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고 따스한 마음이 듭니다. 뒤피의 그림을 설명하기에는 제 표현력이 비루하니 그림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음악, 파리, 파티, 승마, 해변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그의 그림과 닮았기 때문일까요.
금방이라도 따스한 햇볕이 드는 노란 장식적인 방안에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이 울려 퍼질듯한 느낌이 드네요.


바이올린이 있는 노란 콘솔, 1949


여러 각도에서 표현한 연주회, 오케스트라의 장면도 눈길을 끕니다.
대충 그린듯한 군중들과 공간.
그중 선명한 것은 그림에 대한 무드뿐입니다.


뒤피는 곡선과 아라베스크가 번성하는 장식 양식에 그림과 색상을 분리한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합니다.

색상은 더 이상 세심하게 구분된 패턴에 제한받지 않고, 외부의 "밝은 색"이 벽을 관통하는 것처럼
모든 광채를 드러내기 위한 톤으로 재생됩니다.

이쯤에서 라울 뒤피(1877. 6. 3 ~ 1953. 3.23)에 대해 알아볼까요.
그는 가난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나무 조각을 통해 장식 예술의 길을 시작하였습니다.

1911년에 섬유 제작 회사인 Petite Usine을 만든 위대한 디자이너 Paul Poiret을 만나면서 전환점을 겪게 되는데요.
이후 뒤피는 새겨진 패턴을 우아한 가구와 의류를 위한 꽃, 동물 및 이국적인 장식으로 인쇄된 커튼과 직물로 바꾸는 직물 디자이너, 혹은 도자기 디자이너로서도 활동하는 등 장인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 사이에서 특유의 다채롭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발전시키는데요.
겉보기에 가볍고 평범한 모티브만을 그렸기에, 그를 삶의 행복의 화가라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매력적인 새들처럼" 밝은 색으로 매혹하는 그의 기교를 높이 사 재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향인 르아브르에서 인상파 부딘이나 모네의 발자취를 작품에 남겼습니다.
인상파 축에서 첫 번째 일련의 작품을 전달하며, 캔버스에 밝고 대기 효과의 연기를 복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표현의 한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떻게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나의 현실을 성취할 수 있을까? 그날부터, 나는 내 눈에 제공된 요소들로 메마른 투쟁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뒤피는 1905년 3월 Salon des Indépendants에서 전시된 마티스의 작품인 럭셔리, 평온, 관능의 발견에서 영향을 받습니다.
화려한 지중해 색채가 있는 그림 앞에서, Dufy는 더 이상 모티브 앞에 있는 유일한 망막 감각이 아니라
창조자의 감정을 번역할 수 있는 솔직하고 순수한 팔레트를 사용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미학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모든 새로운 이유를 이해했고 인상파 리얼리즘은 그림과 색에 도입된 상상력의 기적을 묵상함으로써
나에게 매력을 잃었다."

디디에 슐만은 "뒤피는 20세기 초에 태어난 문체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카멜레온 예술가이다. 그는 이러한 다양성에 대해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실험할 수 있는 엄청난 손재주를 부여받은 시대에 맞춰온 예술가이다"라고 말합니다.

나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더럽고 추한 것을 없애도록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일까요. 뒤피의 그림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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