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모금

[ 이건 봐야해 ] 마리 로랑생 (Marie Laurencin)의 몽환적 분위기

my jeje 2022. 10. 2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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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난 그녀!
방 한 칸에 온통 로랑생의 그림이 걸려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울해 보이면서도 몽환적인 여성들에서 눈길을 떼기 어려웠어요.
파스텔톤의 색감때문일지, 초점이 없는 여인들의 커다란 눈동자 때문인지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졌습니다.


Marie Laurencin (1885-1956)

마리 로랑생은 파리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 이전의 르누아르처럼, 18세부터 도자기 그림을 공부했는데요.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1902년 아카데미 험버트에서 미술 교육을 계속하여 유화로 초점을 바꾸게 됩니다. 반 친구들 중에는 Georges Braque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Pablo Picasso, 시인이자 비평가인 Guillaume Apollinaire와 만나게 됩니다.

로랑생은 20세기 초 시각 예술의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축, 입체파와 콜라주 창조에 참석한 파리의 아방가르드 화가와 시인의 작은 내부 그룹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과,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는 1907년부터 1913년까지 격렬한 연애를 합니다.


그녀를 입체 주의자로 만들기 위한 아폴리네르의 노력이 있었지만, 로랑생은 본인의 스타일을 고수하는데요. 그들의 관계가 끝나자 그녀를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만들려는 압력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녀는 1956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콜레트, 코코 샤넬, 헬레나 루빈스타인을 포함한 파리와 뉴욕의 저명한 사회 인물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초상화가로서 우아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지속합니다.


 

그녀의 그림은 묘사를 거의 제거한 단순한 형태에 여러 가지 팔레트의 섬세한 파스텔톤의 팔레트를 사용합니다.
로랑생의 여인은 내면의 심리적 묘사보다는 섬세한 로코코 형태의 외면만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추상적인 배경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흐르는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을 주제로 했습니다. 그 모델들은 목가적인 꿈의 세계에서 말을 타거나 풀밭에 누워 있기 때문에 개성에 의해 차별화되기보다는, 종종 고전적으로 이상화되고 무표정합니다. 로랑생의 뮤즈들은 젊고, 여성이고, 나른하고 나태한 방식으로 아름답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그녀는 독일 태생의 남편 오토 폰 와에첸 남작과 함께 스페인 망명을 위해 프랑스를 떠났습니다.
1920년에 이혼한 후 파리로 돌아와 1930년대의 경제 불황까지 예술가로서 재정적 성공을 거두고, 춤과 극장의 낭만적인 꿈의 세계를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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